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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 LIFE/인물

20세기 대표적인 사진 작가 - 아놀드 뉴먼(Arnold Newman)

by off_fic 2021. 1. 15.

아놀드 뉴먼

작가에 대해서

"아놀드 뉴먼" (1918 ~ 2006)

 

아놀드 뉴먼은 1918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두 살 나던 해인 1920년 뉴저지 주의 아틀란틱 시로 온 가족이 이사를 갔다.

그곳에서 아버지가 새로 호텔을 경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소년단에서 벤 로즈라는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새로 사귄 친구의 취미가 사진이어서

그도 자연히 사진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는데, 이것이 훗날 사진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는 모든 과목 중에서 그림의 재능이 가장 두드러졌고, 본인도 또한 관심이 주로 거기에 쏠렸었다.

1938년 그는 아틀란틱 시를 떠나 마이애미 비치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뉴먼의 아버지가 1936년에 아틀란틱 시에서

경영하던 호텔 이외에 마이애미 비치에다 호텔을 하나 더 차렸다. 이 때문에 뉴먼이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옮기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 그림에 남달리 뛰어난 재주를 인정받아 마이애미대학교의 장학생으로 입학을 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집안의 갑작스러운 몰락으로 중퇴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1939년 필라델피아의 연쇄 사진관에 취직을 했다. 하루 평균 60 ~ 70명이 넘는 인물사진을 처리해야만 하는 분주한 

일자리였다. 이러한 환경에서 사진에 차츰 익숙해지면서 그의 암실 작업이나 사진을 찍는 솜씨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틈나는 대로 그는 자신이 찍고 싶은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1941년 6월 중순 그는 뉴욕으로 가 스티글리츠의 화랑을 방문하고, 말로만 듣던 사진계의 원로를 직접 만나 여러 가지

격려의 말을 들었다. 그 후 다시 뉴욕에 서 당시 현대미술관의 사진부장으로 있던 뷰먼트 뉴홀에게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뉴홀은 그의 사진에 좋은 인상을 받아, 뉴먼의 고등학교 때부터의 사진 친구인 벤 로즈와의 개인전을 주선해주었다. 지방 출신인 무명 사진가의 전시회 치고는 의외로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많은 예술가들, 특히

미술가들과 알게 된 그는 한동안 뉴욕에 머물러 있으면서 이들의 인물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가 본격적으로

사회의 저명인사나 예술가들을 찍기로 마음먹고 내디딘 첫걸음이었다.

 

1942년 징집영장을 받고 마이애미 비치로 가던 중 다행히 징집이 연기되는 바람에 그곳에 자기 자신이 직접 영업 사진관을 차렸다. 그 후 지방에 있으면서 틈틈이 뉴욕 나들이를 하여 그동안 알게 된 예술가들과 그들의 주변 인물들을

계속해서 찍어 나갔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그동안의 작업을 일단 마무리하는 뜻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필라델피아의 미술관에서 가졌다.

전시장에 걸렸던 사진들은 모두 팔렸고, 전시회에 대한 평가도 좋았다. 이에 힘입어 뉴욕으로 사진관을 옮길 결심을 하고, 1946년 뉴욕의 번화가인 맨해튼 56번가에 스튜디오를 새로 내었다.

그의 모험적인 결단은 아주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여러 잡지사로부터 유명인사나 예술가를 찍어 달라는 주문이 예상보다 많이 들어왔던 것이다. 몇 해 가지 않아서 뉴먼은 미국 사진계에서 인물사진만을 주로 찍는 전문가로 소문이 나게 되었다. 1951년 뉴욕 카메라 클럽이라는 전시장에서 그동안에 찍은 사진들 중에서 110점을 추려 회고전을 열었다.

이 해에는 또한 독일에서 개최되는 포토키나가 마련한 사진문화상을 수상하는 경사까지 겹쳤다. 1954년 이제까지 미국 안에서만 맴돌던 활동무대를 세계 속으로 펼쳐 반년 동안 세계적인 명사들의 인물 촬영을 위한 여행을 했다.

1955년 다시 개인전을 했고, 1957년엔 포토저널리즘상과 포드 회사가 제정한 보도부문의 상금을 받았다.

60년대로 넘어서서 더욱 바빠지고 명성을 날린 그는 1967년 사진집 [브라보 스트라빈스키]를 펴냈다.

이후 74년 [마음의 눈, 78년 [미국의 얼굴], 79년 [위대한 영국], 80년 [예술가]를 각각 출판했다.

 

뉴먼의 사진 세계에서 두드러지는 첫 번째 특징은 대상 인물의 생활공간을 화면 속에 끌어들인 점이다. 그의 인물사진에서는 반드시 주인공이 살고 있는 현실 공간의 가운데서 파악되고 있다. 재래적인 초상사진은 스튜디오의 배경 앞에 있는 인물 자체만을 다루었다. 그러니까 사진의 중심이 되는 인물의 삶의 현장이 생략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인물사진을 평론가들은 '환경적 인물사진'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종래의 영업 사진가들이 촬영 준비를 마친 다음 인물을 카메라 앞에 서게 하는 입장과는 달리 스튜디오 안에 있는 시설을 대상 인물의 생활공간 속에 옮겨다 놓고 대상의 현실 속에 들어가 카메라를 동조시킨 것이다.

 

그의 사진 세계에서 드러나는 두 번째 특징은 현실 공간을 끌어들이되 그것이 사진의 중심인물과 조화를 이루게 하는 엄격한 화면 구성이다. 그의 사진들은 하나같이 모두 조형적으로 철저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런 시도는 스스로 밝혔듯이 몽드리앙의 순수조형의식을 사진에 적용한 것이다. 절대적인 순수 조형의 추구는 대상들의 보이는 현상 세계를 넘어선,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시작적 요소와 원리를 추출하는 것이다. 대상에 대한 피상적인 파악이 아니라 내면적인 핵심을 직접적으로 파악하자는 것이다.

 

그의 사진의 세 번째 특징은 사회적인 현실성과 참신한 디자인 감각의 조화적 모색이다. 보도사진가들이 인물사진을 사회적 현실 속으로만 몰고 가는 것과는 반대로 상업 사진가들은 일방적으로 단순한 디자인 감각만 가지고 피상적으로 인물사진을 다루었다. 뉴먼은 서로가 양극적인 대립을 하나로 종합하여 새로운 그 나름의 독특한 인물사진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의 사진 세계는 30년대 이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그래프 저널리즘의 보도사진과 상업사진에서 발전한 인물사진을 제2차 세계대전 후 하나로 통합시키는 변증법적인 발전을 꾀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뉴먼의 인물사진은 보도사진의 현실적인 사회의식과 상업사진의 현대적인 디자인 감각이 한데 맞물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뉴먼의 사진 세계는 누구의 아류가 아닌 오직 그만의 독특한 것이 되고 있다.

 

아놀드 뉴먼의 사진 컬렉션

(출처 :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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